[아르떼 칼럼] '점프'의 미학

입력 2023-08-06 18:06   수정 2023-08-07 00:15

‘하이 다이빙’이라는 스포츠가 있다. 일반 다이빙이 1, 3, 10m 위에서 물로 뛰어 내린다면, 하이 다이빙은 20m(여자), 27m(남자) 위에서 뛰어내린다. 2~3m만 돼도 아찔한데 얼마나 무서울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저 아래 물이 있다는 걸 알지만.

다이빙은 ‘어떻게 떨어질 것인가’에 대한 탐구다. 중력에 가속도가 붙으면 최고 시속 90㎞에 이른다. 엄청난 힘을 이기며 다양한 점프와 트위스트를 한 뒤 최대한 물을 튀기지 않고 깔끔하게 입수하며 충격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신이 머무는 창공에 대한 열망
다이빙이 중력에 순응하는 움직임이라면, 점프는 중력을 거스르는 움직임이다. 인간은 얼마나 높이 뛰어오를 수 있을까. 장대높이뛰기 세계기록은 6.22m이고, 높이뛰기 세계기록은 2.45m다. 눕다시피 몸을 기울여야 2m 남짓을 뛰어오른다는 얘기다. 몸통을 세우고는 얼마나 높이 뛸 수 있을까. 장애물 달리기의 허들 높이는 남자 106.7㎝, 여자 83.8㎝다.

그렇다면 오직 높이, 그리고 우아하게 뛸 방법을 생각해보자. 공중에서 두 다리를 쫙 벌리며 뛰어오르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발레의 대표 점프인 ‘그랑 제테’다.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희열을 가장 극적으로 표출하는 동작이다.

발레를 형용하는 특질로 ‘에테르(ethereal·천상의)’란 단어를 사용한다. 창공을 지칭하는 히랍어 ‘Æther’에서 파생된 말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심연의 혼돈 카오스로부터 어둠의 신 에레보스와 밤의 여신 닉스가 태어났고, 이들로부터 창공의 신 아이테르(Aither)와 낮의 여신 헤메라가 태어났다. 인간은 신이 머무는 창공을 열망해 왔고, 이런 정신은 발레에서 극적인 형식으로 발현됐다.

발레는 점프 연습을 아주 오랫동안 체계적으로 한다. 땅을 밀어내기 위한 근육의 힘을 키우고, 도약 및 착지 때 충격을 줄여주는 ‘드미 플리에’, 공중에서 가볍게 머무르는 ‘발롱’ 등을 가르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골격이 덜 자란 어린 나이에 큰 점프를 시키지 않는 절제다. 이런 훈련 끝에 그랑 제테가 완성된다.

그랑 제테는 두 가지의 힘, 즉 두 다리를 동시에 앞뒤로 벌리는 힘과 몸통을 높이 띄우는 힘이 동시에 작용하는 움직임이다. 둘을 제대로 해내기는 쉽지 않다. 가로와 세로의 움직임이 절묘한 균형을 이룰 때 마치 공중에 머무르는 듯한 환영을 만들어낸다. 그런 환영을 만들어낸 무용수는 전설이 된다.

그 옛날 바츨라프 니진스키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내려올 줄 몰랐다던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가 전해진다면, 오늘날 점프로 유명한 무용수는 김기민이다. 마린스키발레단 주역 무용수인 김기민의 별명은 ‘플라잉 킴’이다. 그를 본 관객이라면 믿을 수 없는 높이로 뛰어오르는 ‘중력을 거스르는 점프’를 잊지 못한다.
중력 못 거스르는 인간 존재 상기
비결이 뭘까. ‘타고 나야 한다’거나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던 그는 최근 좀 더 자세하게 비결을 풀었다. “마지막까지 기다렸다가 점프 직전에 아주 빨리 준비 동작을 한 다음 뛰고, 공중에서 힘을 뺀다”고. 응축시켰다가 한 번에 폭발하는 힘, 그건 창공에서 빛났다가 사라지는 불꽃놀이 같다. 그랑 제테가 아름다운 이유는 중력을 거스를 수 없는 인간 존재의 조건을 상기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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